어릴 적에 꿈을 하나 꾸었어요
커다란 나무가 하늘까지 솟아 있고
초록빛 나뭇잎이 무수히 흩날리며 떨어지는 중이에요
그 앞에 제가 서 있고 그 중 하나의 나뭇잎을 잡아야해요
그 때 목소리가 들려요
이 중 정답은 무엇일까?
정답? 아무리 고민해봐도 문제도 없고 해결책도 없고
그저 눈 앞에 흩날리는 초록빛 나뭇잎만 있을 뿐이에요
문득 손을 뻗어 손에 잡히는 나뭇잎을 잡았어요
그리고 그 나뭇잎을 잡는 순간 깨달았어요
아, 정답이란 건 없는 거구나
내가 고민하고 있는 삶의 수많은 갈림길은
정답이 있는 게 아니고
눈 앞의 무수한 나뭇잎처럼
저마다의 아름다움과 고민거리를
모두 조금씩 가지고 있는
그저 눈 앞에 흩날리는 나뭇잎일 뿐이구나..
아이들이 즐겁게 공부하도록 교육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면서
다시 한 번 정답이란 없다는 것을
그저 나와 내 아이들에게 맞는 길을 선택하고
내가 선택한 그 길을 책임져야만 한다는 것을 되뇌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학창시절 공부하면서 정답을 맞추는 교육을 받아왔어요. 저는 이 교육이 주입식으로 지식을 넣는 교육,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교육이면서 주변 친구들과 경쟁관계에 있도록 하기 때문에 좋지 않은 교육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문득, 그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건 바로 "정답이 존재한다"라는 사실이었어요.
시험문제에는 정답이 존재합니다. 객관식이든 주관식이든 언제나 정답이 존재해요. 그리고 정답이 아니면 오답입니다. 이건 책임의 관점에서 본다면 정답을 고른다면 그 때에는 어떠한 책임도 질 필요가 없다는 의미에요. 모든 사람이 만장일치로 지지하는 답이면서 그 정답을 고른다면 100% 좋은 것이고 책임져야 할 일은 0%가 되지요.
그러나 실제 세상에서 선택해야 할 일들은 그렇지 않아요. 100% 모든 사람이 지지하면서 좋은 일만 있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 때문에 그걸 선택한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은 0%인 선택. 그런 정답 같은 것은 없어요. 세상 모든 일에는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습니다. 좋기만 한 일도 없고 나쁘기만 한 일도 없지요. 그러니 스스로 선택을 하고, 그에 따른 결과로 좋은 점은 마음껏 누리면서 나쁜 점은 감당해나가야 합니다.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은 그 나쁜 점까지도 나의 선택이며 그 부분은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의미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학교를 다니면서 늘 정답을 고르는 교육을 받았던 우리는 정답은 무엇일까 고민합니다. 이걸 고르면 정답일까 싶어 골라봤는데 책임져야 할 일이 생기면 그럼 잘못 골랐던 걸까 고민합니다. 그리고 그게 정답이었는 여부를 다른 사람에게 물어봅니다.
왜냐하면 정답은 선생님이 채점하시는 것이니까요. 수능 볼 때 언어영역에서 고전을 했었습니다. 내가 생각한 답은 정답이 아니었거든요. 아무리 생각해도 내 답도 맞을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그걸 고집하면 점수는 받을 수 없었습니다. 정답을 맞추려면 출제자의 의도, 내가 아닌 선생님의 의도대로 답을 적어야 합니다.
결국 정답이란 외부의 기준에 의해 정해지는 거였어요. 그러니 성인이 된 지금도 무언가 선택을 해야 하는 갈림길에 있을 때 자꾸 외부에 물어봅니다. 부모님, 친구들 의견을 들어보는 것은 좋지만 최종 선택권은 나에게 있는 것인데 자꾸만 물어봅니다. 의견을 참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답을 찾기 위해서. 내부의 기준에 따라 내가 선택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배워온대로 외부의 기준을 찾아 헤메게 됩니다.
또 하나 성인이 되어서까지 우리의 행동반경에 영향을 미치는 건 바로 시험범위의 존재입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보면서 우리는 시험범위를 잘 알아야 했어요. 왜냐하면 그 범위를 모두 공부해야 하는데 범위를 잘못 알고 있으면 시험 점수가 낮아지는 불이익이 생기니까요. 그리고 이 시험범위도 선생님이 지정해주십니다.
문득 우리나라 공교육이 미국의 공립학교 교육, 말 잘 듣는 공장 노동자를 양성하기 위한 그 교육을 그대로 도입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시키는 일을 잘 하려면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잘 파악해야겠죠. 그 범위는 내가 생각하는 게 아니고 위에서부터 주어지는 일입니다. 어려서부터 시험범위를 파악하는 데 익숙해진 우리는 고용된 상태에서도 매우 효율적으로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일을 해야 하는지 파악해서 시행하게 됩니다.
뭐, 월급쟁이로 살아가면서 일을 하는데 필요한 능력이기는 했으니 그에 대해 불만이 있지는 않아요. 다만 무서워졌던 것은 그럴 필요가 없는 곳에서 우리의 시험범위를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였어요. 바로 아이들 교육에 관해 알아보면서요.
특히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준비를 하면서였던 것 같아요. 아이와 이런 저런 공부를 미리 해보기도 하고, 어떤 걸 준비하면 좋을까 검색해보기도 하다가 불안해하면서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을 다 한 것이 맞을까, 해야하는데 빠뜨린 것은 없을까 고민을 하고 있었죠. 그러다 문득 이 불안감이 시험범위를 제대로 체크한 게 맞을까 하고 확인하던 때의 심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랬어요. 어느 누구도 지정해주지 않았는데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그 범위를 찾고 있었던 거에요. 외부로부터 주어져야 하는 그 시험범위를 찾고 있는데 아무도 그 범위에 대한 "정답"을 알려주지 않아 불안했던 거에요. "여기서부터 여기까지가 시험 범위고, 그 이외의 것은 하지 않아도 돼"라고 말해주는 선생님이 계시지 않아서 이게 어디까지가 범위인지 알 수 없어 불안했던 거였어요. 사실 그런 범위 같은 것은 없는 문제였는데도..
시험 범위가 존재한다는 사실의 또다른 무서운 결과는 시험범위 밖의 문제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거에요. 경쟁에서 이기려면 시험범위 안쪽을 열심히 외우고 또 외워야 하는데, 범위 밖의 문제, 시험에 나오지 않는 문제에까지 관심을 쏟을 여력 따위는 없었어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시험범위 밖의 문제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는 일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게 성인이 된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요. 해야 하는 일, 하면 도움이 되는 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 그런 일들을 하고 나면 그 외의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아요. 그건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니까요. 호기심을 가져봤자 시험범위 밖의 일이니 내 점수 올리는 데 필요한 일을 할 시간만 잡아먹으니까요. 이것이 사실은 정말 무서운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주어진 일 이외에는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정말 위에서 조정하면서 일을 부려먹기에 적당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시험 범위에서 벗어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질문을 해야 합니다. 궁금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삶의 주인이며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선택할 자유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Holes. 요즘 아이랑 함께 읽고 있는 책이에요. 사실 저는 재미있어서 몇 번이고 봤던 책인데 아이가 읽기 시작해서 다시 한 번 아이와 함께 읽고 있는 중입니다 ^^ 여기에서부터는 이 책의 내용에 대해 스포가 있을 수 있으니 아직 책을 읽지 않았고, 나중에 읽을 예정이시라면 다음 내용은 읽지 않으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
대략적인 줄거리를 소개해드리자면 여기 주인공인 스탠리는 운이 매우 나빠요. 언제나 wrong place, wrong time, 즉 안 좋은 시간에 안 좋은 장소에 있지요. 그리고 그건 스탠리가 알지도 못하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no-good-pig-stealing-great-great-grandfather 잘못 때문이에요 ㅋㅋㅋ 그 할아버지의 한 순간의 실수로 저주에 걸리고만 스탠리의 가족은 대대로 안 좋은 시간에 안 좋은 장소에 있는 나쁜 운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그런데 이 책의 주인공인 스탠리에게 마법 같은 일련의 일들이 벌어지고 가족의 저주가 풀리면서 나쁜 운은 사라지고 행복한 결말을 맺게 됩니다~ 이야기도 재미있고 정말 복선에 복선에 복선이 깔리는 이야기라 처음 볼 때보다 두 번, 세 번 볼 때 더 재미난 정말 정말 좋아하는 책이에요! ㅎㅎㅎ
그런데, 저주가 풀리는 마법 같은 일련의 일들이 일어나기 직전에 제 생각에는 정말 의미심장한 문장이 하나 나옵니다. 그건 바로 어떤 일에 대해 스탠리가 이번에는 one hundred percent 자기 책임이라고, wrong place, wrong time에 있어서 일어난 일이나 no-good-pig-stealing-great-great-grand father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라 100% 자신의 책임이라고 고백하는 문장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책임지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마법같은 일들. 저는 사실 이것은 정말 마법이고, 그 마법을 발동하는 주문이 바로 one hundred percent, 백 퍼센트 내 책임이라고 하는 스탠리의 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늘 안 좋은 장소에 안 좋은 시간에 있고 그 원인은 내가 알지도 못하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걸린 저주 때문이라는 말. 이 말에는 일어난 사태에 대해 나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말이기도 해요.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니까요. 이 책에서 사용하는 단어랑 문장이 웃기기도 하고, 저주받은 계기가 되는 일도 우습기도 해서 그냥 웃고 넘어가긴 했는데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는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우리만의 no-good-pig-stealing-great-great-grandfather를 탓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어떤 일이 잘못 되었을 때 이 책에서처럼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지는 바람에 그냥 나쁜 시간과 장소에 있었다고 백프로 남 탓을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일부는 내 잘못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있었던 것 같아요. 나도 잘못을 하기는 했지만 억울한 점도 있잖아? 내가 그러려고 한 것은 아니었잖아? 나만 잘못한 게 아닌데 왜 내가 책임을 져야해?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저도 많이 있어요.
하지만 내가 선택을 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것의 의미는, 모든 상황 속에서 순수하게 나의 과실이 몇 %인지 계산하고 그만큼만 책임진다는 게 아니에요. 억울할 수도 있고 wrong place, wrong time에 있었을 뿐, 상황의 탓이었을 뿐이라고 생각될 수 있는 모든 나쁜 점들에 대해서도 내가 감수해야 할 것은 꿀꺽 삼키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의연히 내가 선택한 길을 걸어간다는 게 바로 자유로운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말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지금도 우리는 나도 모르는 no-good-pig-stealing-great-great-grandfather를 탓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정답도 시험범위도 없는 이 세상 속에서, 남이 정해준 답이 아닌 내가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걸어가면서, 100 퍼센트 내가 짊어져야 할 책임을 지고 우직하게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 앞에도 그동안의 저주를 모두 풀어줄 마법 같은 일들이 벌어지지 않을까요?
스스로 선택한 나뭇잎 한 장을 손에 쥐고
오늘도 어깨에 올려진 짐을 한번 추스르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며
내가 선택한 나의 길을 아이들과 함께 걸어가봐야겠습니다
저에게도, 또 여기 들러주신 모든 분들께도
멋진 마법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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